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녕 요정 (문단 편집) === 결말 === [include(틀:스포일러)] 마야의 고향을 알아낸 모리야는 직접 유고슬라비아로 떠나 마야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마침 그날 밤 다치아라이로부터 꼭 오늘 밤에 만나야 한다는 전화가 걸려 왔고, 모리야는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약속 장소로 나갔다. 모리야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난민]]들이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도 있을 테니 우선 이탈리아로 간 뒤 그곳에서 사라예보로 건너가서 마야를 찾아내 구하겠다고 말한다. 다치아라이는 냉정하게 만류하지만 모리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치아라이는 결국 체념했다는 듯 모리야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라예보]]에서 온 편지였다. 마야는 모리야, 시라카와, 후미하라 그 누구에게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혹여나 모리야가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마야는 다치아라이만은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만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다치아라이는 마야에게 편지를 썼고 모리야가 건네받은 봉투가 바로 그 답장이라며 당장 읽어 보라고 재촉하였다.[* 영어로 도착한 편지를 다치아라이가 일본어로 다시 번역했다.] >편지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내 편지가 당신에게 갈 것인가. >사라예보는 참혹하게 변했다. 이 편지가 무사히 일본에 전달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마리야의 오빠, 슬로보단. 동생에게 쓴 진심 어린 편지를 읽고 매우 기뻤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듯 당신에게도 고통스러울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 '''내 동생, 그리고 당신의 친구 마리야는 [[5월 22일]][* 모리야가 추리의 답을 도출해낸 시점으로부터 두 달 전.] 저격병의 총에 목을 맞고 사망했다.''' 마리야의 [[무덤]]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라예보에서는 점점 제대로 된 무덤을 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마리야는 당신을 사랑했다. 다른 여러 나라를 사랑했듯 그 아이는 일본을 사랑했다. 그 아이는 일본에 다시 갈 수 있기를 강하게 소원했다. 나는 그것을 일부만이라도 들어주고 싶다. 우리가 사는 곳에 평화가 돌아왔을 때(신이여, 그날이 머지않았기를) 당신이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동생을 대신해 우리가 당신을 환영하겠다. 그것이 동생의 평안을 위한 길이기를. > >슬로보단 요바노비치 편지를 읽은 모리야는 다치아라이에게 어째서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분노와 절망에 찬 말을 내뱉었지만, 다치아라이는 너 같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절규하며 자신을 너무 매정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리고 봉투에 같이 들어 있었던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은 얼룩이 묻어 있는 모리야가 마야에게 선물해 주었던 [[수국]] 머리핀이었다. 모리야와 다치아라이는 마야와의 추억이 있는 산꼭대기 묘지에 머리핀을 묻었고, 실패의 자책감과 무력함에 젖은 모리야의 씁쓸한 독백과 함께 작품이 마무리된다. 꿈도 희망도 없는 등장인물의 사망 전개. 유고슬라비아가 하나 되기를 소망하던 소녀는 유고슬라비아가 찢어지는 과정에 휘말려 허무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보스니아 전쟁]]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내전 기간 동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등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참혹한 비극을 겪었다. 현재까지도 회복이 완전히 되지 못한 상황. 당시 사라예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라도반 카라지치의 세르비아군과 민병대가 비세르비아계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르비아인에게 자행한 [[전쟁 범죄]]와 주민들이 당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세르비아가 아니라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군대를 만났어도 큰일인데, 마야는 세르비아계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계에게 학살, 억압으로 대했던 걸 감안하면 이들에게 살해당했거나 여성인 이상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만일 마야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보스니아에 남아서 생존했든, 보스니아를 버리고 다른 구 유고 연방 출신 국가인 세르비아나 북마케도니아로 피난 또는 도주했든. 마야가 정말 안전하려면 처음부터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잔류하는 것을 택했어야 했다.] 상당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갔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